中, '총통 방미' 반발 했지만…안방손님 맞은 시진핑, 수위조절?

펠로시 대만 방문 땐 즉각 강도높은 군사훈련으로 '일촉즉발'

방중 마크롱 등 손님 의식…내년 대만 총통 선거에 부작용 우려도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오른쪽)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 [AF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오른쪽)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 [AF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현윤경 기자 =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미국을 방문해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난 것에 대한 중국의 반발 수위가 예상보다 낮으며,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현재 더 큰 걱정거리를 안고 있어서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차이 총통은 지난달 29일부터 9박10일 일정으로 중앙아메리카 2개국을 순방한 뒤 귀국길에 미국 캘리포니아에 들러 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인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매카시 의장을 만났다.

대만 총통이 미국 현지에서 미국 정부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중국은 현재까지는 비교적 절제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불룸버그는 지적했다.

중국 외교부는 차이-매카시 회동 직후 "하나의 중국 원칙과 중미 3개 공동성명(수교 성명 등) 규정을 엄중하게 위반하고, 대만 독립·분열 세력에 엄중하게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는 내용을 담은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대만 국방부는 또한 지난 24시간 동안 대만 주변 지역에 접근한 중국 군용기 1대와 선박 3척을 감지했다고 6일 밝혔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대응은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작년 8월 대만에 도착한 직후 사실상 침공을 염두에 둔 대만 봉쇄 군사훈련을 펼치며 이 지역을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고 간 것과 비교하면 강도가 훨씬 약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시 국가주석이 며칠 내로 좀 더 공격적인 군사적 대응을 계획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현 시점에서 반응을 자제하고 있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짚었다.

작년 11월 15일 발리에서 만난 마크롱-시진핑 [신화  자료사진]

작년 11월 15일 발리에서 만난 마크롱-시진핑 [신화 자료사진]

우선 시 주석은 현재 안방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손님으로 맞이한 상황이다.

자신이 제시한 우크라이나 평화 중재안에 대한 지지를 얻고, 반도체 등 최첨단 기술에 있어 중국을 노골적으로 견제하려는 미국에 맞서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한 시 주석으로서는 손님 면전에서 날선 반응을 보일 경우 모양새가 빠질 수밖에 없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시 주석의 초청으로 오는 7일까지 사흘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 우크라이나 전쟁 해법과 중국·유럽 관계 개선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호주국립대학의 대만 및 양안 관계 전문가인 원티 성은 "중국이 이런 국면에서 군사적 긴장을 심각하게 고조시키면 중국을 방문 중인 마크롱과 폰데어라이엔의 처지가 곤란해질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해온 유럽-중국 간 유화적인 기류가 변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중동의 '앙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를 중재하는 등 외교적으로 존재감을 부쩍 과시하고 있는 시 주석은 곧바로 오는 11∼14일에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손님으로 맞으며 외교 행보를 이어간다.

또한 중국이 작년 펠로시 전 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군사적으로 강경 대응한 것이 주변국들의 불안감을 키워 역내 지정학적인 상황의 급변으로 이어진 점도 중국으로서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관측했다.

그 이후 필리핀은 미국과의 군사관계 강화에 착수했고, 한국과 일본은 안보협력의 걸림돌로 작용하던 해묵은 역사 갈등을 해소하기로 합의했으며, 호주는 미국과 영국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펠로시 전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강경 대응으로 유럽 지도자 다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중국 역시 대만을 곧 침공할 것으로 생각하는 등 중국과 러시아를 한묶음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도 중국에게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오랫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아시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각국 정부와 기업체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재평가하게 됐고, 이는 '제로 코로나' 정책 등으로 인한 경제 둔화에서 회복하고자 하는 중국의 계획에 차질로 작용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시 주석이 이번 차잉원의 방미에 대해 과도한 대응을 자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만이 내년 1월 총통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 위협을 강화하는 것은 대만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이 이끄는 민주진보당(민진당)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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